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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카 프로젝트] 2권 예수향기


[베라카 프로젝트] 1권인 "터키행전"에 이어 2번째 책 "예수향기" 집필이 시작되었습니다. 탈북자 사역을 하시는 소공녀(가명) 선교사님의 중국과 북한 이야기를 통해 큰 은혜 받으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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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향기 1장 신랑 예수를 만남 (1) 신랑을 잃고 예수를 만나다

남편에 외도를 처음 알게 되었다. 깊은 배신감에 가슴이 아팠지만 두 아이들을 생각하면 쉽게 헤어지자는 말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이는 "잘못 했다" "다시는, 죽어도 다시는 그런일 없을거다" 무릎까지 꿇고 빌기까지 했지만 그 외도는 끝나지 않았다. 이런 부끄러움을 다른 사람에겐 숨겨야 했기에 속으로 썩어 문드러져가며 마음에 상처는 깊어졌다.

그 이는 가정폭력도 심했다. "넌 어릴 때 많이 맞았다며? 맞으면서도 때리는 어른들이 한심해서 웃었다고 했지? 어디 나에게도 웃어봐" 하면서 때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렇다. 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일찍 여의였기 때문에 이유로 어른들은 나를 기분내키는대로 때리면서 학대했다.

어느 날 남편에게 맞으면서 문득 세상에 나를 도와줄 어른이 아무도 없었던 그때로 돌아 갔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날로 옷 가방만 끌고 집을 나왔다. 그리고 다시는 그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모든 것을 남편에게 다 주고 집도 돈도 차도 그렇게 아끼던 아이들도 다 주며 법원에서 만나서 그가 그렇게도 원하는 이혼을 해 주었다. 나만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외도는 해도 그래도 결국 나만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나는 너무 순진했다. 15년 결혼생활이 그 날로 끝났다.

그리고 찾아간 곳이 문막 B 교회, 엄밀히 말하면 교회를 짓다가 멈춰있던 그 곳 지하 예배실이었다. 예배실에서 살면서 계시록을 하루에 20번씩 읽고 가슴을 치며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서 통곡하며, 분노와 배신감 증오가 뒤범벅이 되어 몸부림쳤다. "나를 살려 두지 마시고 죽이시라" "살 이유도 가치도 없는 쓸데 없는 존재로 두지 마시라"고 그렇게 부르짖으며 기도했다.

그렇게 온 마음이 멍들어 아픔이 충만할 때, 내 가슴을 불덩이가 뜨겁게 내리 때렸다. 두 손으로 막으려 했지만 결국 그 에너지에 나뒹굴어 두 시간이 넘게 회개하며 가래를 토해냈다.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B 교회 J 목사님을 통해 내게 영적인 눈을 열어 주시고 다듬어 주셨다. 목사님께서는 "이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부인하고 버리세요"

결국 내가 아파하는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고, 15년 교회생활에 대한 허무함, 사람에 대한 연민과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 모두 내려놓게 되었다. 그 때 바로 그 지하 예배실에서 내게 찾아오신 주님 때문에 나는 신랑 예수님과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은혜를 받으니 말씀을 더욱 사모하게 되었다. 그래서 찾아간 양수리 B 선교회, 성경통독반에서 지금 현재의 남편이자 동역자가 된 귀한 목사님을 만나게 하셨다.

그러던 중 어느 모임에 중국선교를 하고 계신 P 목사님이 선교보고를 하시는데 “중국에는 너무나 많은 선교사님들이 필요해요. 그 땅을 밟고 기도만 해주셔도 되지만, 북한에서 달아나온 사람들이 길에 널렸어요. 구걸하며 내미는 손잡아 데리고 와서 세를 얻어 놓은 아파트에서 성경을 가르칩니다. 이 일에 동참해 주시고 한 달에 만원도 좋으니까 물질로, 기도로 몸으로 섬겨주세요. 신학을 안 나와도 괜찮아요, 구원에 확신과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대신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확신 있게 믿는 믿음만 있으면 그들과 함께 앉아 있기만 해도 기도만 해 줘도 그들은 변화 됩니다.”

그 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내 뒤 목덜미를 누군가 붙잡아 일으키는 느낌을 받았다. 뒤를 돌아보아도 아무도 없는데, 내 가슴 속에서 못 들은 척 가만히 있으면 죽을 것만 같은 떨림이 나도 모르게 번쩍 손을 들게 만들었고 "제가 갈래요!" 선교사님은 "할렐루야!!"

이렇게 해서 그 다음 화요일에 선교사님을 따라 중국 S 지역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다시 하나님이 선교에 훈련을 시작하셨다. 너는 선교사가 아닌 순교자라고 말씀하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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